제1장
결혼 3년 차, 김우미는 재벌가의 가짜 아가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이혼을 강요하며 진짜 아가씨에게 약혼을 돌려주라고 했다.
김우미는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난 누구랑 결혼하든 상관없어.”
그녀는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일주일 후, 십여 대의 헬리콥터가 김우미 앞에 착륙했고, 그 위에서 국내 최고 재벌가의 도련님 세 명이 내렸다.
그들은 감격에 찬 얼굴로 외쳤다. “동생아, 20년 만이야. 드디어 널 찾았어!”
“두 달 출장 다녀와서 겨우 한 번만 했다고? 당신 몸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이른 아침, 격렬하고 만족스러운 정사가 막 끝난 후, 김우미는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 같았다.
향긋한 땀에 흠뻑 젖고 온몸이 노곤해 숨조차 고르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남자의 탄탄한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남자는 막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낮고도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만족 못 했어?”
“당연하지. 당신 때문에 눈만 높아졌잖아! 근데 진짜 안 되는 거면 빨리 병원 예약해서 치료받아. 괜히 병 키우지 말고….”
김우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분노가 담긴 키스를 퍼부었다.
박연주는 원래부터 절제할 줄 모르는 데다 이런 도발까지 당했으니, 이번 침범은 당연히 급하고 거칠었다.
“김우미, 오늘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지!”
김우미는 온 힘을 다해 그에게 호응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가 열정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잠자리에서만큼은 마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김우미는 개의치 않았다.
박연주와 결혼한 지 이미 2년, 그녀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의 마음을 녹일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꿈꿨다!
그 생각에 김우미는 두 팔로 그의 넓은 어깨를 꽉 붙잡았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였다.
박연주는 몸소 김우미에게 자신의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아주 좋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평소처럼 셔츠와 슬랙스를 입었다.
훤칠한 키에 심플한 옷차림은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긴 다리를 완벽하게 드러냈고, 외모 또한 조물주가 편애한 역작처럼 수려했다.
살짝 위로 올라간 눈꼬리의 봉황 같은 눈은 깊고 다정했으며,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더없이 고귀했다.
남자가 느긋하게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을 때, 갑자기 다급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박연주는 한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무어라 말했는지, 그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몇 초 후, 전화를 끊은 남자는 깊은 눈으로 김우미를 빤히 쳐다봤다.
김우미는 거의 기절할 듯 지쳐 있었지만, 마지막 남은 의식을 쥐어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누구 전화예요?”
박연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당신이 김씨 그룹의 가짜 아가씨라고 하던데? 당신, 김원 회장님과 피 한 방울 안 섞였다고? 진짜 아가씨도 찾았다고 하고?”
김우미의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전, 그녀의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다가 혈액형이 그녀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김씨 그룹은 즉시 인터넷 전체에 핏줄을 찾는 공고를 냈고, 보름 전 진짜 친딸인 김미지를 찾았다!
친딸을 찾은 그날 밤, 김씨 그룹은 성대한 환영 파티를 열었고, 김미지는 수영장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김우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김씨 그룹은 격노했고, 수많은 사람이 그녀를 ‘살인 미수’의 흉악범이라며 욕했다.
그렇게 그녀는 가짜 아가씨라는 이유로 순리대로 집에서 쫓겨났다!
박연주는 두 달간 출장을 가 있었기에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우미는 원래 기회를 봐서 그에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시어머니 이미희가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김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적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박연주는 지극히 평온한 어조로,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일을 말하듯 말했다. “어머니 말씀은, 이 결혼은 원래 박씨 집안과 김씨 그룹이 맺은 거니, 진짜 아가씨가 돌아온 이상 그 약혼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거야.”
그 말인즉슨, 그녀에게 결혼을 김미지에게 돌려주라는 뜻이었다!
김우미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짜 아가씨라는 신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와 박연주는 이미 2년간 결혼 생활을 했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게 말처럼 쉽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시어머니 이미희의 태도보다 김우미는 박연주의 태도가 더 궁금했다.
“당신은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김우미는 손가락을 꽉 쥐며 기대에 찬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결혼 후 2년간 자신이 완벽한 전업주부였다고 자부했다.
그의 식사와 생활 전반을 거의 그녀가 직접 챙겼다!
그녀의 보살핌은 지극정성이었다.
그녀는 박연주가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조금의 호감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의 다음 대답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얼음물처럼 그녀를 뼛속까지 차갑게 만들었다.
“생각 없어. 그냥 결혼 약속일 뿐이야. 상대가 누구든 나한테 큰 영향은 없어…. 나 오늘 저녁 비행기로 옆 도시에 며칠 출장 가야 하니까, 먼저 갈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김우미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정장 재킷을 챙겨 나가버렸다.
쾅—
문이 가볍게 닫히는 순간, 김우미는 숨이 멎는 듯한 질식감을 느꼈다.
동시에 심장을 누군가에게 난폭하게 찔린 듯,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남자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았다.
누구든… 상관없다는 건가?
그렇지.
박연주에게 결혼이란 그저 있으나 마나 한 부속품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뿐!
바로 이 순간, 김우미는 그 남자가 얼마나 냉혈한 인간인지 깨달았다.
그의 마음은 아마 그녀가 평생을 바쳐도 녹일 수 없는 얼음 같은 것이리라!
박연주가 떠나고 한 시간 후, 시어머니 이미희가 이혼 합의서를 들고 찾아왔다.
그녀는 서류를 집어 던지며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결혼 2년 동안 알 하나 못 낳는 것도 모자라, 가짜 아가씨였다니! 내가 진작부터 너는 부귀할 상이 아니라고 했지, 내 말이 딱 맞았잖아! 이제는 신분도 불분명하고 살인 미수까지 저질렀으니… 그런 뱀 같은 심성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연주 짝이 되겠어? 당장 서명하고 박씨 집안에서 썩 꺼져!”
김우미는 원래도 감정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이혼 합의서로 얼굴을 맞으니 말문이 막힌 듯했다.
잠시 후, 그녀는 겨우 목소리를 되찾아 물었다. “이게 그 사람 뜻이에요? 아니면 어머님 뜻이에요?”
이미희는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 “내 뜻이자, 그놈 뜻이다! 너 같은 게 감히 우리 박씨 집안의 문턱을 넘어? 너희가 이혼하면, 다음 달에 연주는 미지를 아내로 맞을 거야. 그 애야말로 우리 박씨 집안의 진짜 며느리감이지!”
김우미의 심장이 찌르르 아파왔다.
그가 그렇게나 조급했던 걸까?
아직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을 텐데, 벌써 이혼 서류를 보내다니.
그녀는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을 참으며 서류를 펼쳤다.
합의서에 그녀가 ‘빈손으로 쫓겨난다’고 적힌 것을 보자 더욱 눈이 시렸다.
요즘 세상에 가사도우미를 해도 월급은 받는다.
박씨 집안에서 2년간 사모님으로 살았는데,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다니!
김우미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희는 김우미가 조건을 내걸까 봐 비꼬는 투로 말했다. “뭐 불만이라도 있어? 신분이 뒤바뀌지 않았으면 네가 2년 동안 걱정 없이 사모님 노릇이나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내가 말하는데, 넌 그냥 만족해. 감히 뭘 더 받으려는 망상은 꿈도 꾸지 마! 당장 서명해. 괜히 사람 시켜서 험한 꼴 보지 말고….”
김우미는 목에 무언가 걸린 듯, 결국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서류에 서명했다.
그녀는 이제야 이미희가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아, 맞다. 너 연주랑 결혼할 때 받은 반지, 당장 내놔! 그거 아프리카 블루 다이아몬드로 명장이 특별 제작한 몇십억짜리야. 네가 낄 자격 없어! 세트로 된 목걸이도 전부 반납해!”
김우미는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금고에 있어요. 한 번도 낀 적 없어요.”
결혼식 날을 제외하고는 평소에 만져본 적도 없었다.
이미희는 지독하게 쏘아붙였다. “분수는 아는구나! 어쨌든 우리 박씨 집안 물건은 하나도 가져갈 생각 마!”
김우미는 그 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다. “걱정 마세요. 제 것이 아닌 물건은 하나도 안 가져갈 거니까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이미희는 마침내 만족했고, 곧바로 사람을 시켜 김우미의 짐을 싼 뒤 그녀를 박씨 집안에서 내쫓았다.
일주일 후, 경시 고속도로 위.
호화로운 벤틀리 행렬이 해성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고귀한 분위기의 젊은 남자가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말했다. “동생 있는 곳 찾았어. 내가 지금 동생 데리러 가는 중이니까 너희들은 오지 마!”
“무슨 소리야? 우리 보물 같은 동생을 20년 만에 잃어버렸다가 겨우 찾았는데, 당연히 내가 가야지! 난 이미 헬리콥터 십여 대를 띄웠어. 우리 보물 동생은 당연히 최고급 의전으로 집에 모셔와야지!”
“우미는 우리 송씨 가문의 유일한 딸이야. 온 가족이 얼마나 기다렸는데. 십여 대가 뭐야? 더 많이 띄워서 진형을 갖춰야 성의가 보이지!”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중후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우미는 내 소중한 딸이야. 너희 같은 녀석들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아무도 가지 마! 나랑 네 엄마가 직접 갈 거다!!!”
나머지 사람들은 소리쳤다. “상관없어요.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데려오는 거예요! 이 일만큼은 친부자 사이에도 인정사정없습니다….”
“…….”
6년 후, 해성시 제일병원.
김우미는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막 끝내고 나오자마자, 멀리 경시에 있는 소중한 딸 미미에게서 온 메시지 폭탄을 받았다.
“엄마, 오늘 몇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 내 새아빠가 되겠다고 청혼했어! 외할아버지가 화나서 바로 개를 풀어서 쫓아냈고, 외삼촌들은 무슨 용기로 왔냐고, 염라대왕이 허락이라도 해줬냐고 물었대! 그 장면 진짜 웃겼어!”
“그 아저씨들 정말 분수를 몰라.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고 제일 예쁜 엄마니까, 당연히 제일 잘생긴 사람이랑 만나야지.”
“엄마, 걱정 마. 그런 썩은 복숭아꽃들은 내가 다 확실하게 잘라버릴게. 엄마를 귀찮게 못 하게 할 거야….”
김우미는 메시지를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집안이 얼마나 난리 법석이었을지 눈에 선했다!
그녀는 웃으며 답장했다. “우리 딸, 고마워!”
그리고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휴게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간호사실을 지나치다 우연히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듣자 하니 저 꼬마, 아빠 병 고쳐줄 사람 찾으러 왔다던데. 누구든 고쳐주면 새엄마가 될 수 있대… 저 애, 최고 재벌가의 어린 황태자라잖아!”
“어머? 그럼 의술이 제일 좋은 사람을 찾아야겠네? 이민지 선생님이 딱이겠는데? 젊고 예쁘기까지 하잖아!”
“…….”
김우미는 원래 남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조금 전, 딸의 새아빠가 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뒤이어 새엄마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호기심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흘깃 쳐다봤다.
곧 그녀는 사람들 한가운데 둘러싸인 작은 아이를 보았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이목구비가 매우 정교하게 생겼고, 말랑말랑한 볼은 꼬집으면 물이 나올 듯 뽀얗고, 붉은 입술과 하얀 이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짧은 두 다리를 까딱거리며, 까만 눈동자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